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대 유니콘스/연고 이전 (문단 편집) === 인천의 빈약한 흥행 시장성 === 그런데 유니콘스의 모기업이던 [[현대그룹]]이 서울로의 연고지 이전을 추진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1999년 개막전'''. [[1998년 한국시리즈|전년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한 팀이었고 개막전 상대팀도 인천에서 상당한 티켓 파워를 자랑하던 [[해태 타이거즈]]였음에도 불구하고 개막전 관중석은 썰렁하기 그지없었다. [[파일:attachment/현대 유니콘스/Example.png]] [[파일:attachment/현대 유니콘스/Example1.png]] 이 문제를 두고 일부에서는 1999 시즌 자체가 IMF의 여파로 야구인기가 사그라들었다는 주장을 하는데, 정작 위의 표와 그래프를 보면 99년은 95년 이래 처음으로 야구 관중 수가 상승세를 기록한 해였다. 실제로 1998~1999 사이 팀별 관중 보면 저 사이에 관중 수가 줄어든 구단은 오로지 '''현대와 쌍방울'''밖에 없다. 그렇다고 현대가 전년도 성적이 시망테크를 탄 것도 아니며 1998년은 현대가 인천야구 사상 처음으로 우승한 해였다. 1996년에도 현대는 한국시리즈 준우승[* 정규리그에서는 4위였다.]팀이었고 그 이전인 1994년에는 태평양으로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이룩했다. 이쯤 되면 맨날 져서 안 간다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실제로 태평양 준우승 다음해인 1995년에는 여전히 40만 명대의 관중을 기록했고, 1996년에는 리그 전체 관중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현대 관중은 오히려 늘었다. 결국 1996년의 475,910명을 기점으로 현대그룹은 이미 인천에서 더 이상의 관중동원은 힘들다고 판단한 것. 1년에 많아야 12경기 정도였던 [[수원시|수원]] 홈 경기가 1999년에 '''21경기'''로 늘어난 것도 이런 점과 무관하지 않다. 5년 내 준우승 2회, 우승 1회 해도 암흑기면 왕조 구축 못하는 팀들은 죄다 흥행이 망한다는 소린데, 그럼 애초에 프로리그라는 게 돌아갈수가 없다. 성적이 무조건 탑클래스가 아니어도 연고의식을 기반으로 꾸준히 소비해줄것을 기대하고 지역연고제를 굴리는 게 아닌가? 인천의 낮은 관중 동원 능력은 도원구장의 열악한 시설과 교통 때문이며 이는 최신 [[인천 SSG 랜더스필드|문학야구장]]이 들어서면 해결되지 않겠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막말로 '''우승을 해도 좁아터진 도원야구장조차 제대로 못 채우는 도시'''에서 거대한 문학야구장을 채울 만한 수요를 창출하리라 당시로서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당장 동시기에 [[롯데 자이언츠]]는 그 거대한 [[사직야구장]]에 1997-1998년 연속 연간 고작 40만여 명밖에 동원하지 못하면서 '''텅 빈 큰 야구장'''의 공포를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고[* 이 시기 롯데는 문동환 - 차명주 - 손민한에게 인당 5억의 계약금을 투자했지만, 성적은 5-8-8이었다. 결국 시즌 중에 [[김용희]] 감독의 해임으로 이어진다.] 광주, 대구 또한 열악한 야구장 상황에 불만만 많다가 연간 관중이 50만을 돌파한 이후에서야 본격적으로 신구장 건설을 밀고 나갈 수 있었다. 실제로 그 최신 [[인천 SK행복드림구장|문학구장]]조차 [[2006년]]까지도 도원구장과 비슷한 관중동원 능력을 보여준 것을 보면 단순히 야구장 문제가 아닌, 인천야구 차원에서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찾을 수밖에 없다. 더불어 도원구장 교통이 안 좋지도 않았다. [[수도권 전철 1호선]] [[도원역]]에서 내려서 걸어가면 5분 거리였다.[* 정식 명칭이 숭의구장이었음에도 도원역 역세권이어서 도원구장이란 별명이 있었다.] 1999년이 인천 경제를 떠받치던 대우그룹의 몰락과 그로 인한 지역 내 기업들의 연쇄 부도로 인천 지역 관중 동원능력이 급감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라고 하지만, 안 그래도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무리하게 출범한 프로야구의 흥행은 더더욱 바라기 힘들어진다. 어쨌거나 현대그룹은 현대 유니콘스의 성공을 위해 인수과정에서부터 470억이라는 거금을 쏟아부은 판이었고, 이후 투자까지 합치면 500억원을 아득히 넘는다. 특히 야구단 대주주였던 현대전자는 1998년 LG전자 반도체사업부 인수 이후 경영 상황이 꾸준히 악화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태평하게 몇 년을 두고 길게 투자할 것을 바라는 것도 무리다. 오히려 야구단을 냉큼 팔아넘기지 않고 연고지를 옮겨서라도 유지하고자 했던 것을 기특하게 생각해줘야 할 판이다. 더불어 서울은 현재 시점에서 프로야구팀 세 개 써도 잘 돌아간다. 다만, 서울은 수원 야구단 창단 이전까지 인천 및 경기 서부를 제외한 수도권 전역에서 야구팬들이 찾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